의생명 연구를 넘어 AI 에이전트 무대로: PseudoCon 2026
안녕하세요. 바이오텍에서 데이터 분석하는 김가경입니다.
2026년 7월 25일, PseudoCon 2026에서 AutoBioX 팀으로 발표를 마쳤습니다. 가짜연구소 12기 스터디로 4개월간 진행한 두 가지 주제를 처음으로 공개 무대에 올린 날이었습니다. 단일세포 멀티오믹스와 병리 이미지 분석, 두 연구를 병렬로 진행한 팀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발표를 많이 해왔습니다. 학회 발표도 했고, 세미나도 했고, 사내 프로젝트 공유 자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발표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시작한 AI 에이전트 연구팀의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발표였습니다. 무엇보다 잘된 결과만 골라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실패한 결과와 시행착오까지 그대로 올린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PseudoCon은 저에게 꽤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PseudoCon은 가짜연구소의 연례 컨퍼런스입니다. 올해는 10번째 행사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에 약 300명이 모였습니다. 발표마다 열기가 이어지면서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세션도 여럿이었습니다.



이날의 발표들
이번 행사를 돌아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발표들이 결국 비슷한 질문으로 모였다는 점입니다. AI가 실행을 맡는다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경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로봇 연구자, 채용 플랫폼 대표, 바이오 연구자, 에이전트 플랫폼 개발자 — 표현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국 같은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신진수님 (KRAFTON) 가짜연구소 10번째 컨퍼런스의 문을 열었습니다. AI 시대의 불안을 혼자 감당하기보다 사람들과 만나고 배우며 방향을 찾자는 메시지였고,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이라는 표현이 하루 내내 배경처럼 깔렸습니다. 커리어를 바꾼 기회는 대부분 우연처럼 오지만, 의식적이고 지속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생긴다는 논지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가짜연구소와 AutoBioX가 그런 계획된 우연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최영준님 (AWS) GPT-3.5 이후 단발 요청·응답에서 상태를 유지하며 여러 단계를 이어가는 실행으로 AI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에이전트를 팀원처럼 활용하되 권한 범위와 에스컬레이션 규칙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는 관점이 인상적이었고, 프롬프트 수준의 소프트 하네스만으로는 부족하고 “이건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정책을 시스템 수준에서 걸어두는 하드 하네스가 필요하다는 말도 이어졌습니다.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AI가 사람을 대체한다”가 아니라 “잘하는 사람의 역량을 더 크게 증폭시킨다.”

임진하님 (GroupBy HR) 채용 플랫폼을 운영하며 목격한 변화를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기술 스택 체크리스트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책임을 지는 일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신사, 카카오페이증권, 채널톡 등이 참여한 해커톤에서는 문제를 아예 안 주고 데이터만 줬는데, 구현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구현해야 할지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AI가 잘못된 답을 내놓으면 “죄송합니다”로 넘어가지만, 회사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손실이 생기면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말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양유석님 (SK Telecom) 로봇 AI 모델의 계보를 15분에 압축했습니다. RT1 → VLA → Open VLA로 이어지는 흐름을 짚었고, 비전 인코더 병목, Diffusion Policy의 속도 문제, Flow Matching이 denoising 40회를 4회로 줄인 해법까지 공학적 흐름이 명확했습니다. 본인 프로젝트도 솔직하게 공개했습니다. Cosmos 기반 데이터 증강으로 MSE 36% 감소했지만, 실제 로봇 동작은 아직이라고.

Kenny Lee님 (RunPod) 이날 유일한 영어 세션이었습니다. 지하실 GPU 두 대로 시작해 기존 HPC 대비 90% 비용 절감 사례를 실시간 데모로 보여줬습니다. Pod, Cluster, Serverless Endpoint 세 계층이 실험, 학습, 배포를 각각 담당하는 구조였고, 영업 없이 Reddit 입소문으로만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준호님 (SK On) GPT 5.6의 Sol, Terra, Luna는 성능 서열이 아니라 작업 맥락에 따라 고르는 다른 역할이라는 정리가 깔끔했습니다. Ultra 모드의 서브 에이전트 병렬 처리, Sites, Computer Use를 실사용 예시와 함께 훑었고, “코덱스가 코드를 얼마나 생성했냐”가 아니라 “코덱스와 어떤 결과물까지 완성할 수 있냐”로 기준이 바뀌었다는 마무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수현님 (HDC Labs) 가짜연구소에 A/B 테스트 플랫폼을 붙이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정리했습니다. 처음에 데이터를 먼저 뒤지다가 2~3주를 헤맸고, “데이터를 먼저 보지 말고 목적을 먼저 세워라”는 교훈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PR 머지부터 배포까지 한 달이 걸린 병목, 실험 시작 하루 만에 60시간 데이터 누락 장애까지 무대에 올랐습니다. 실험 플랫폼만으로는 부족하고 배포, 모니터링, 장애 복구까지 갖춰야 한 사이클이 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저의 발표
저는 2부 세 번째 순서로 “의생명 멀티에이전트 실전기: 단일세포부터 병리 이미지까지”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AI로 바이오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AI를 연구에 실제로 붙여보면 어디까지 잘하고 어디서 실패하는가, 그리고 그 실패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디에서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AI 과학자의 현실적인 한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재현 성공률 1.8%, 코드 실패율 40%라는 수치가 이미 보고돼 있습니다. AutoBioX는 이 문제를 멀티에이전트 구조로 풀려 했습니다. 기획, 요약, 예측, 검증, 근거 조사 역할을 에이전트별로 나누고, 서로 교차 검증하도록 했습니다. 사람은 모든 작업을 직접 하는 대신 방향을 정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역할에 집중하는 구조입니다.
첫 번째는 단일세포 크로마틴 멀티오믹스 프로젝트였습니다. 처음 목표했던 chromatin-transcription lag 지표를 계산했더니 상관계수가 0.04였습니다. 사실상 무의미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분석 과정에서 AI가 새로 제안한 전사 속도(α) 지표는 분석 방법을 바꿔도 Spearman 0.82~0.88로 일관됐습니다. 처음 기대했던 곳에서는 신호가 나오지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곳에서 더 견고한 신호를 발견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새로운 지표를 찾았다는 사실만은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믿지 않은 것, 그리고 실패한 가설을 억지로 살리지 않고 검증 과정에서 버릴 수 있었던 것. 그 자체가 연구의 중요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유방암 H&E 병리 이미지에서 분자 마커(ER, PR, HER2, PAM50)를 예측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복잡했습니다. ER, PR은 이미지 기반 예측만으로도 충분하지만, HER2는 추가 분자 검사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PAM50은 이미지에서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 결과를 곧바로 치료 결정에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발표에서 가장 강조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맞힐 수 있다’와 ‘기존 검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AI가 어떤 지표를 잘 예측한다고 해서 그 검사를 바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측 성능과 임상적 유용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희가 그린 것은 결국 ‘치료 결정 지도’였습니다. AI를 어디에 써도 되는지, 어디에서는 기존 검사가 반드시 필요한지, 어디에서는 아직 유보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지도입니다.
검증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는 수치를 내보내지 않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방법 원칙과 방향 위주로 전달했습니다.


실패도 슬라이드에 올렸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일부러 숨기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실패와 시행착오입니다.
처음 목표했던 지표가 실패했다는 것, GPU 서버 물리 장애, 핵심 팀원 이탈로 역할에 공백이 생긴 것, 저장 장치 병목으로 비싼 GPU가 놀았던 것. 이런 이야기도 연구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연구를 해보면 성공한 결과만 깔끔하게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무엇이 실패했는지 알아야 다음번에 더 잘할 수 있고, 어디서 병목이 생겼는지 알아야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큰 작업 전에 미리 점검하고, 반복 작업은 자동화하고, 병목은 SSD로 우회하고, 사람과 AI의 역할도 계속 다시 설계했습니다. 결국 이 시행착오들이 자동화와 역할 설계라는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가짜연구소가 실패를 드러내고 다음번에 더 잘하기 위해 함께 배우는 커뮤니티라면, AutoBioX도 같은 방식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좌민주님 (HF KREW) Hugging Face 영문 블로그 번역, 품질 검수, SEO, PR 리뷰를 에이전트 루프로 자동화했습니다. 번역 커밋이 생성되면 SEO 스킬과 퀄리티 스킬이 병렬로 돌아가고, 두 스킬의 리포트가 PR 코멘트로 남으면 PR 에이전트가 CI 로그를 읽어 수정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였습니다. GitHub PR 자체를 에이전트 상태 메모리로 쓰는 설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루프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는데, 프롬프트보다 언제까지 얼마나 돌릴지를 설계하는 것이 에이전트 시스템의 핵심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찬란님 (Pseudo Lab) 가짜연구소 운영진 대표로 마지막 순서를 맡아 Betoken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토큰이 다음 의미를 예측하듯, 작은 기여와 만남도 성장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NVIDIA, OpenAI 등 여러 협업이 커뮤니티의 자발적 기여에서 시작됐다는 과정을 공유했고, 가짜연구소 자체가 그 증거라는 논지였습니다. 12기 빌더들이 오늘 무대에 올린 것도 그 흐름의 일부였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에이전트 이그나이트에서는 여러 분이 개인 프로젝트를 짧게 선보였습니다. 내가 들은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김민아님(웍스피어)의 업무 위키 에이전트는 슬랙, Notion에 흩어진 업무 기록을 구조화해 이력서 초안까지 자동 생성하는 파이프라인이었습니다. 수집과 정제는 됐는데 결과를 믿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회고도 솔직했고, “병목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마무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박상준님의 Hyam은 에이전트를 암호화된 패키지로 배포해 하네스를 공개하지 않고 결과만 제공하는 구조였습니다. 데모에서 내부 구조를 요청했을 때 검증 로직이 직접 거부하는 장면이 포인트였습니다. 박상준님은 AutoBioX 팀원이기도 해서, 같은 팀원이 이그나이트 발표자로 별도 무대에 서는 걸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박영웅님(SK Telecom)의 Personal LLM Knowledge Base는 Obsidian, Confluence, Slack에서 지식 그래프를 자동 축적하는 구조로, RAG가 요청마다 데이터를 꺼내 쓰는 것과 달리 상시 컴파일되는 위키에 가깝습니다.

가짜연구소는 AI/ML에 관심 있는 연구자, 개발자, 실무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학습 커뮤니티입니다. 이번 PseudoCon은 그 10번째 컨퍼런스로, 발표 세션 외에 12기 팀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부스로 전시했습니다. 저는 AutoBioX 외에 가짜연구소 내 A/B 실험을 실제로 운영하는 실험 플랫폼 팀에도 데이터 분석 담당으로 함께했는데, 이 팀도 이날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발표 준비로 시간대가 맞지 않아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행사장 한편에는 “가짜연구소에서 가장 얻어가고 싶은 ‘진짜’는?”이라고 적힌 포스트잇 보드가 있었습니다. 각자의 언어로 적힌 답들이 빼곡했는데, 그 장면 자체가 이 커뮤니티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뒷풀이
뒷풀이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얼굴만 알다가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만 연결돼 있다가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음 질문
발표를 마치고 나니 생각보다 후련했습니다. 처음에는 발표 자체보다도, 아직 논문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연구를 공개해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서는 방법과 방향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수치는 검증 게이트가 닫힌 뒤 공개합니다. 연구 결과를 보여드리는 것과 검증되지 않은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오히려 더 확실해진 것도 있습니다. AI 에이전트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에이전트의 수가 아닙니다.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 어디에서 서로 검증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 판단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두 연구를 각각 진행했지만, 재미있는 것은 결국 두 연구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단일세포 연구는 시간의 흐름을 봅니다. 병리 연구는 지금 눈앞에 나타난 모습을 봅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치료 저항성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지금보다 훨씬 선명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완성된 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풀어보고 싶은 다음 질문입니다.
논문은 다음 행사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이번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연구 내용을 오픈소스화하고 지식으로 정리해 나가는 데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방향으로 계속 이어가면서, 새로운 주제도 탐색하려고 합니다.

AutoBioX 팀원 지용기님, 박세진님, 서정한님, 류재면님, 이건규님, 박상준님에게 감사드립니다.